해연이네에 올렸던거 재업

 

 

 

 

 


#1





큐와 본드는 5년차 사내커플임. 둘은 같이 동거하고 같이 고양이도 키우고 같이 재무설계를 받지. 그래서 주변에서는 둘을 사실혼 관계로 알고 있지.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둘은 그런 얘길 들으면 금시초문이라는 투로 에???? 아닌데??????? 라고 말하고 자기 갈 길 쿨하게 감 ㅋㅋㅋㅋ


예를 들면 이런거임. 본드가 출장을 나갔다가 현장요원과 함께 돌아올 때였음. 어제 어깨 인대가 살짝 늘어난 것 때문에 아침부터 반깁스를 하게 된  본드가 그 어깨를 하고도 끊임없이 지역 유명한 베이커리를 돌아다니는 거야. 그리고는 이것저것 골라서 잔뜩 싣고 비행기에 올라타지. 대체 뭘 이렇게 많이 샀냐는 동료의 말에 본드가 말함.



"비행기 하나 못 타는 주제에 입맛은 글로벌하거든."


"큐요?"


"응. 이런거 사다 주면 좋아해. 티타임 가질 때 꼬박 꼬박 단거 챙기고."


"아.."



본드는 기내 인터넷을 이용해 큐에게 창밖 구름 사진을 찍어 보냈지. 큐는 그걸 보고 으아아아아악 혐짤 자제여 라고 답장하고. 그걸 힐끔힐끔 보다가 아 뭔가 둘의 사생활을 이렇게 지켜보는건 아니다 싶어서 고개를 억지로 돌린 동료는 곧 소리내서 웃기 시작하는 본드를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지. 방금 어제도 수십명을 죽이고 온 MI6 현장요원이 핸드폰을 보면서 웃고 있잖아. 동료가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자 본드가 핸드폰을 보여주며 말했어.



"화장실에 타일이 떨어져서 자기가 붙였다는데, 이렇게 붙여놨어. 미치겠다. 꼭 덧니 난 것 같아. 그나마 목공본드로 붙여놔서 떨어지려고 한대. 하하.. 가서 할 일이 늘었네."



화장실 타일이 하나 비뚤게 붙은 게 그렇게 웃길 일인가??? 동료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 동료는 그렇게 웃는 본드의 네번째 손가락에서 빛나고 있는 심플한 백금 링을 보며 말했어.



"결혼생활이 잘 맞으시나 봅니다."



그러자 본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지.



"대체 무슨 소리야. 난 아직 총각이야. 내가 그런 죄수들과 동류로 보이나?"


"...."



같은 시각, 큐는 재무팀의 카렌과 심각하게 재무상담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 큐는 안경을 손으로 밀어올리며 카렌이 가져다 준 보험 및 펀드, 각종 금융상품과 예,적금을 분석했어. 몇 개는 노란 펜으로 별표를 쳤고, 나머지 몇 개는 인상을 찌푸리며 빨간 펜으로 쭉쭉 엑스표를 쳤어.



"이거 진짜 심각하다. 어떤 바보가 이런 상품을 사요? 투자은행의 돼지들이 또 사기를 치나 본데. 이거 보세요. 계산해봤을 때 이 상품은 이 구간 안에 들지 않으면 일반적 투자의 평균수익률보다 고작 몇 포인트 정도 많은 금리를 받을 뿐이라구요. 하지만 책임지게 되는 리스크는 어마어마하죠. 요행히 이 구간 안에 든다고 하더라도 환율 한 번 요동쳐버리면 바로 돈을 더 토해내야 할 걸요. 이딴 걸 누가 들어. 아직도 19세기인줄 아나."


"....그게 올해 가장 히트친 상품인데요.."


"바보들."



큐는 가장 안정적인 상품 몇 개를 고르고 난 후 나머지 서류들은 쫙쫙 찢어버렸어. 그리고 잘 모아 폐휴지함에 넣었지. 큐는 정보를 준 카렌에게 고맙다면서 선물을 가져왔어. 얼마 전 본드가 사다준 터키쉬 딜라이트였지. 카렌은 얼마 전에 본드가 터키에 다녀왔단 걸 기억해내. 그리고 본드의 안부를 묻지. 본드의 안부를 묻자마자 큐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어. 그리고 한숨을 쉬며 하소연을 시작했지.



"수입의 35%는 저축하고 25%는 투자하는게 맞는 거죠?"


"그렇죠."


"이 인간은 나 안만났으면 어떻게 살았을지 몰라요. 은퇴와 함께 보호시설로 직행했을 인간이라니까요."



그거야 당연히 현장 요원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카렌은 사회성이 뛰어난 인간이어서 그냥 닥쳤어.



"재산내역을 떼어 봤더니 팔리지도 않을 부동산 몇 개 외엔 빈 깡통이더라구요. 은퇴가 많이 남은 것도 아닌데 대체 왜 그러나 모르겠어요. 꼼짝없이 삼년 후엔 제가 먹여살리게 생겼어요. 정 안되겠다 싶으면 은퇴 후엔 연수원으로 가서 강의 하게 시키려구요. 앞으로 돈 들어갈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정신 차리려면 한참 멀었어요. 2주일 전에도 멀쩡한 차를 바꾸겠다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야단을 쳤더니 가출을 하더라구요. 기가 막혀서. 그러더니 반지를 사왔어요. 누가 이런거 받고 싶댔나?"


"드디어 프로포즈 받은 거에요?"



큐의 눈썹이 꿈틀했지.



"아니요? 촌스럽게.."


"아.. 난 또. 둘이 이제 정말 결혼하는구나 싶어서.."


"우웩. 제 나이에 유부남이라니. 생각만 해도 메슥거려요."



하마터면 카렌은 그 메슥거리는 게 혹시 임신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물어볼 뻔 했지. 큐는 반짝거리는 반지를 손으로 몇 번 돌리다 다시 서류를 보며 말했어.



"연금보험은 어떤 게 좋아요?"




#2

 

 

 

 

 

 

 


 

 

큐와 본드는 5년차 사내커플임. 둘은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진 사이지. 서로의 생활에 너무 녹아들어서 이젠 상대가 내 팔다리 같은 존재인게 보고 싶다. 그래서 서로 싸우는데도 본인들은 심각한데 남들이 보기에는 그게 흔한_사랑싸움.yeomjang 이 되는거지.


예를 들면 이런거임. 본드는 어김없이 무기를 또 안 가져왔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큐를 본다는 생각에 룰루랄라 기분좋게 큐브랜치로 들어옴. 회사 안이니까 큐는 속으로는 반가워서 죽지만 겉으로는 사무적으로 안경을 한 번 들었다 올릴 뿐이지.



"무기는요."


"없어."



반가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ㅋㅋㅋㅋ 큐의 눈이 분노로 커짐과 동시에 큐브랜치 안에는 정적이 감돌겠지. 큐는 마시던 얼그레이를 쾅 소리나게 탁자에 내려놓고 폭풍 잔소리를 시작함.



"공무원으로서의 자각이 있는 거에요? 그게 다 국민 세금이라구요. 그리고 안그래도 예산도 빠듯해 죽겠는데 그걸 왜 버리고 와요. 왜!"



본드는 여유롭게 말하겠지.



"미안해."


"미안하다면 다에요? 솔직히 말해요. 챙기기 귀찮아서 안 가져온 거죠. 별 이유 없잖아요. 그렇죠. 나 화나게 하는 게 재밌어요?"



하면서 폭풍 잔소리 시_작.. 큐브랜치의 팀원들은 평소에 그렇게 이성적인 우리 팀장님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하면서 숨죽인채 지켜보고 있지. 그런데 정작 본드는 그냥 말로만 미안해 미안해 하면서 격정적으로 분노를 쏟아내는 큐의 머리를 쓸어주는 거야. 그런데 잘 보니까 달래려고 쓸어주는게 아니라 헝크러진 머리를 빗겨주는 것에 가까움. 이리 저리 뻗친 곱슬머리 잘 정리해서 귀에 꽂아주고 눈을 찌르게 생긴 앞머리는 옆으로 잘 넘겨줌. 큐브랜치 사람들은 저러다가 손을 한 대 맵게 맞지 않을까 하고 불안불안하지.



"내가 다 잘못했어. 앞으로 좀 숙여봐. 머리가 왜 이래."


"생각이란 게 있으면 말이야!"


"고개 너무 푹 숙였다. 조금 들어. 내가 다 미안해. 잘못했어."


"예산 추경편성 받을 때 참고인으로 데리고 갈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이정도면 됐어요? 고개 아픈데. 애초에 물건을 잘 챙겨오면 이럴 일도 없잖아요."



그러나 큐는 그 와중에도 본드가 하라는 대로 머리를 푹 숙였다가 약간 들었다가 하면서 머리를 가져다 대고 있었지. 그렇게 큐의 잔소리가 사그라들때쯤 본드의 머리손질도 끝을 봤지.



"앞으로 또 그럴 거에요?"


"안 그럴게."


"됐어요 그럼. 사람 많으니까 이쯤 해요."



이제까지 다 떠들어놓고 뭘 새삼스럽게 이쯤... 직원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참았어. 이쯤 하자는 큐의 말을 듣고 본드가 머리에서 손을 뗌과 동시에 큐가 머리를 들었지. 세상에. 큐의 악성 곱슬이 잘 정리된 거야. 그 전 큐의 머리가 격랑치는 파도였다면 지금은 포실포실 양처럼 변한거지. 본드는 그런 큐에게 말해.



"그럼 이따 보지."


"그래요."



그런데 그날이 마침 큐브랜치의 회식이 있는 날이었어. 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회식에 참여하지. 오히려 나중엔 직원들이 눈치를 봄. 팀장님 오늘 일찍 안들어가셔도 되냐고. 큐는 ????? 하는 표정을 지음. 아니.. 그... 더블오세븐-애인이라고 해야 할지 남편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코드네임으로 말함- 이 돌아온 날인데 여기 있어도 되나 싶어서요.. 사회성이 부족한 큐는 더욱 ??????????????? 이런 표정을 지음. 나중엔 그 직원이 답답했는지 설명을 하려고 하지. 팀장님 오늘 여기 계시면 안되잖아요. 더블오세븐 옆에 있어 주셔야죠. 그러자 큐는 엄청나게 불쾌한 표정을 짓더니 이렇게 말하지.



"나는 큐브랜치 소속이잖아요. 왜 내가 큐브랜치 회식 자리에 있으면 안되는 거죠? 설마 날 왕따시키는 건가요?"



팀장님 그게 아니잖아요.. 직원들은 그게 아니라고 서둘러 말하지. 큐는 그럼 됐다면서 술잔을 들이키고 야무지게 3차까지 가. 그리고 집으로 멀쩡하게 돌아가지. 집에서는 분위기 잡느라 스테이크에 와인 세팅해놓고 기다리던 본드가 열을 내며 기다리고 있어. 큐 이놈의 자식 들어오기만 해봐라. 내 가만 안둔다. 마침내 큐가 플랫의 문을 열자 본드의 잔소리가 폭풍처럼 쏟아지지.



"대체 왜 전화를 안받는 거야. 전화는 뒀다가 수프 끓여먹을 일 있어?"



큐는 신발을 벗다 멈칫하며 말하지.



"회식이었.."


"회식? 술까지 먹고 들어왔어? 오늘같은 날 넌 꼭 회식에 가서 3차까지 뛰고 와야겠어? 난 네가 어디 납치라도 당했나 했어. 그런데 고작 회식? 그거 때문에 내 전활 안받아? 얼마나 신나게 놀았으면 전화도 안받아!"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잖아요.. 업무시간엔 전화 받으면 안ㄷ..."



본드의 파란 눈에서 불꽃이 탁 튀었지. 본드가 야단을 랩처럼 치기 시작했어.



"넌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 오늘은 내가 출장에서 돌아온 날이잖아. 그러면 데이트는 못할지언정 나랑 같이 저녁이라도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미안해요.."


"그런 생각이 전혀 안들어? 날 사랑하긴 해?"


"사랑해요."


"말로만 그러는 거지. 너 지난번에도 이런 식이었잖아. 굳이 네가 맡아도 되지 않을 일을 맡아서 내가 공항에서 널 얼마나 기다렸..블라블ㄹ라라블라라.."



그동안 융통성 없는 큐 때문에 품어왔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졌지. 평소에 말도 잘 없던 본드에게서 방언처럼 불만이 터져나오는데 본인도 말하면서 속이 터지는지 가슴을 쳤어. 그러자 큐가 쪼르륵 달려가서 술을 한 병 들고 온 뒤 온더락을 한 잔 만들어서 본드에게 가져가겠지. 본드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마시면서 계속 큐에게 뭐라고 해. 그럼 큐는 자기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새 컵에 집게로 새 얼음을 넣고 다시 한 잔 따라서 본드가 들고 있는 빈 잔과 바꿔줌. 그럼 본드는 또 그걸 마심 ㅋㅋㅋ 그렇게 한참 화를 내던 본드가 온더락 안의 얼음을 보고 말하지.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너랑... 어. 얼음 특이하네."


"온더락용으로 얼음틀 하나 샀어요."


"잘샀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말이야. 앞으로 내가 출장다녀오면 집에 좀 일찍 들어오라는 거야. 내가 남들처럼 홀딱 벗은 몸에 리본 두르고 침대에 앉아있는 걸 바라는 게 아니잖아. 그런데 컵도 차가운게 좋네. 이거 무슨 컵이야."


"그냥 냉장실에 뒀어요."


"앞으로 또 그럴 거야?"


"안 그럴게요."



본드가 한숨을 푹 쉬었지. 큐는 본드에게 다가가 어깨를 주무르며 입에 초콜릿을 하나 까서 넣어줬어. 본드는 술을 먹고 난 후 마지막에 초콜릿을 하나 먹는 습관이 있었거든. 초콜릿을 먹고 난 본드가 큐의 허리를 잡고 이마를 맞대며 말했어.



"샤워하자."



큐가 입술을 쭉 내밀어 본드의 입술에 뽀뽀를 쪽 하며 말했지.



"지난번에 좋다고 한 향으로 샤워바스 바꿔놨어요."



허리를 감싸안고 욕실로 들어가며 둘은 각자 생각했지. 나니까 널 거둬주지. 너 진짜 그 성질머리로 나중에 누구랑 결혼할래. 누군지 아주 팔자가 눈에 뻔하다 뻔해.






#3

 

 

 


지방세 납부 기간이야. 큐는 요며칠 세금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있지. 벌면 뭐하나. 이렇게 세금으로 어영부영 다 나가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큐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책상에 본드와 자기의 세금 내역을 양 쪽으로 펼쳐두고 동시에 계산을 시작했어. 계산을 마치고 나자 어지간하면 흥분하는 일이 없는 큐의 얼굴에 빡침으로 인한 약한 홍조가 떠올랐지.



"... 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난 애도 안 낳을 거고 .. 학교 다닐 때도 월반을 자주 해서 남들보다 3분의 1은 덜 다녔구만.."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암산을 마친 큐는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이런 대화를 듣게 되지.



"낸시! 축하해요! 여왕이 동성결혼 합법화에 사인을 했다면서요?"


"네. 조만간 알렉스와 혼인신고를 하러 갈 생각이에요. 당장 세 부담이 줄게 생겨서 너무 다행이에요. 그동안은 둘 다 단일가구라 세제혜택이 거의 없었거든요."



세제혜택..!


큐의 머릿속에 저 네 글자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지. 큐는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어. 결혼을 해야겠구나.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난 후 싹 까먹었지.



**



저녁이야. 본드는 하루 종일 강도 높은 훈련을 마치고 온지라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러그에 껌처럼 붙어 쉬고 있었지. 큐는 그 옆에서 스툴에 랩탑을 올려놓고 못다한 작업을 하는 중이었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뭔가가 생각난 큐가 랩탑 안에 들어갈 것처럼 박고 있던 고개를 들고 주변을 휙휙 둘러봤어. 큐의 시야에 파스를 잔뜩 바른 채 비몽사몽 혼몽을 헤매는 본드가 들어왔지. 큐는 본드를 불렀어.



"본드. 본드."


"....."


"본드!"


"....."



이 아저씨가. 큐는 한 쪽 다리를 들어 본드의 엉덩이를 발가락으로 꾹꾹 눌렀지.



"....왜."


"요즘 그렇게 안 바쁘죠?"


"... 어."


"그렇구나. 그럼 우리 결혼해요."


"...."


"난 요즘 좀 바쁘니까 당신이 준비 좀 해요."



큐는 그 말만 남기고 바로 랩탑에 머리를 박았어. 잠시의 침묵 후 잠이 확 깬 표정의 본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지.



"뭐?"


"뭐요. 왜."



큐는 랩탑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건성으로 대답하지.



"너 지금.. 뭐라고..."


"결혼하자구요. 준비 좀 해봐요."


"아니 지금..."


"나 지금 바빠요."



본드의 혼이 머리 위로 쏙 빠져나갔지. 슝..



다음 날, 잠을 설친 본드가 까칠해진 얼굴로 MI6로 출근했어. 태너는 왜 이렇게 얼굴이 안좋냐고 물어봐. 그러자 본드가 이렇게 대답하지.



"... 큐가 결혼하자고 해서."


"아 난 또 뭐라고. 새삼스럽게 왜요?"


"... 몰라. 그런데 해야 할 것 같아."


"그런데 대체 왜 그렇게 도살장 끌려가는 소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거에요?"


"이제 외박도 마음대로 못하고 재산도 같이 모으고 맨날 같은 사람과만 해야 하잖아. 거기다가... 용돈 받아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런 것들이라면 5년 전부터 해오고 있던 거잖아요. 뭘 새삼스레.."


"적어도 용돈은 안 받았어. "


"그러면 결혼 못하겠다고 해요."


"그건 안돼. 큐가 결혼하자고 했다니까. 해야돼."


"......"


"아참. 인터넷 찾아보느라 한숨도 못잤어. 결혼 준비를 나보고 하라는데, 어떻게 하면 돼?"


"그야 뭐... 식장을 잡고.. 옷을 사고.. 청첩장을 돌리고.. 결혼식날 쓸 꽃을 주문하고.."


"옷? 무슨 옷?"


"턱시도요."


"아. 난 많아. 큐나 하나 사줘야겠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아. 프로포즈는 했어요?"


"프로포즈? 걔가 나한테 한게 프로포즈 아니야? 결혼하자고 한 거?"


"그래도 그게 다가 아니죠."


"그런가?"


"꼭 해야 돼요. 아니면 같이 사는 내내 쿠사리 먹어요."



프로포즈를 정식으로 안했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해마다 쿠사리를 먹고 있는 태너의 경험담이었지. 태너의 부인이 태너에게 했다는 짓(술마시면 매일 얘기한다. 애들에게도 니애비는 나한테 그 흔한 프로포즈 한 번을 안했다. 니애비는 나쁜놈 나는 불쌍한 여자 이렇게 언플을 한다. 그러고도 모자라 결혼 기념일 마다 프로포즈를 가지고 걸고 넘어진다) 들을 모두 들은 본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어.



"네 부인은 여자잖아."


"성별이랑 상관 없는 거라니까요. "


"그럼 꼭 해야겠네. 그냥 결혼하자고 하면 돼?"


"반지와 꽃을 사요. 일단 그게 먼저에요. 그리고는... 정해진 답은 없지만, 일단은 이벤트가 필요할 거에요. 케익 안에 반지를 넣는다거나, 까페를 통째로 빌린다거나, 주변 사람들을 모두 집에 부른 다음 서프라이즈 파티를 한다거나, 테마파크 특설무대에서 노래를 하면서 반지를 준다거나.."


"....환장하겠네."


"아니면 그냥 영국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둘이 풀코스로 저녁을 먹는 거에요. 바다가 보이는 곳이나 강이 보이는 곳도 좋아요. 거기서 와인을 한 잔 하는거죠. 촛불을 켜놓고 준비한 반지를 주는 거에요."


"그런거라면 뭐. 괜찮네. 반지만 주면 되는 거지?"


"무릎을 꿇고 줘야죠. "


"... 두 무릎 다?"


"....."


"아무리 결혼이라는 죄를 짓고 그 벌을 기꺼이 받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그건 너무 반성하는 초등학생 같은데."


".....한쪽만요. 기사 작위 받을 때 처럼."


"아. 이제 알겠어. "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나. 태너는 눈앞이 깜깜해져 오는 걸 느꼈지. 그런 태너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본드는 잠시 머릿속으로 유명한 레스토랑들을 떠올리다 말했어.



"그게 어린애들이 좋아하는 방식 맞지?"


"글쎄요. 요즘 젊은애들은 이벤트를 더 좋아하지 않나. "


"....."


"설마 이벤트 하시게요? 무리하지 마시고 그냥 성격대로 하세요. "


"제대로 해야 해."


"...."


"큐가 결혼하자고 했으니까."

 

 

 

 

#4

 

 

 

 

 



며칠 후, 점심시간의 큐브랜치에 본드가 난입했지. 본드는 깔끔한 수트를 입고 등 뒤로 뭔가를 숨기고 있었어. 딱딱하게 굳은 표정에 뭔가 의지에 차 보이는 눈빛을 본 큐브랜치의 팀원들이 헐;;; 설마... 총기난사인가;;;; 뒤에 저거 기관총인가;;;;; 하며 슬금슬금 자리를 뜨려 할 때였어. 점심을 먹고 잠시 엎드려 자고 있는 큐에게 걸어간 본드의 등이 팀원들의 눈에 들어왔지. 기관총으로 오해받았던 그건 놀랍게도 꽃이었어. 그리고 바늘 하나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딱 맞게 재단된 본드의 바지 뒷주머니엔 사각형의 뭔가가 튀어나와 있었어. 반지..?! 그걸 본 큐브랜치의 직원들이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지. 드디어..!



본드는 큐의 책상으로 가서 큐가 자고 있는 걸 확인했어. 그리고 큐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지.



"어이."


"으음..."


"어이. 큐. 일어나."


"...아..뭐야..."



큐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일어났어. 그런 큐의 볼에는 설상가상으로 A4파일 자국까지 길게 나있었지. 하지만 본드는 상관하지 않았어. 큐가 고개를 흔들어 잠을 마저 떨궈내며 대체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본드가 한쪽 무릎을 꿇었지. 헉.. 대박.. 그러느라 드러난 본드의 엉덩이 곡선을 보고 여직원 두 명이 현실비명을 질렀어. 정작 큐는 얼떨떨하게 본드를 바라보고 있었지.



"결혼해줘."



본드는 꽃과 함께 반지를 내밀었어. 큐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반지와 꽃과 본드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 그러다 곧 자기 뺨을 두 손으로 짝짝 때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눈 앞의 본드는 현실이었지. 큐가 낮잠자서 탁해진 목소리로 얼빵하게 물었어.



"지금 뭐하는 거에요?"



**



"본드. 본드. 그러니까.."


"됐다."



감동하긴 커녕 그런 식으로 나오다니. 김이 새버린 본드가 반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그럼 수고하라며 돌아서버렸지. 그리고 뒤늦게 직원들의 성화에 자기가 실수했음을 알고 뛰쳐나온 큐가 본드를 향해 달려갔어. 얼마 후, 본드와 큐는 반지와 꽃을 중간에 둔 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었지. 이제야 모든게 파악된 큐가 본드에게 뭔가를 해명하려 했지만 본드가 딱 끊어버렸어.



"난 프로포즈 한거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 마."


"...누가 이런거 할줄 알았나."


"결혼하자고 한건 너야. 그리고 나보고 준비하라며."


"아.. 그래서 그랬구나. 난 그냥 서류상 부부로 해놓자는 말이었는데. 내가 설명을 잘 못했나봐요."


".....내 참."


"세금 때문에 그런 거에요. 이번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면서 세제혜택이 늘었거든요. 우리 세금 너무 많이 내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번거로운 걸 내가 일방적으로 당신에게 떠맡길 리는 없잖.. 어? 어디 가요?!!"



큐의 말에 화가 난 본드가 주먹을 꽉 쥐고 먼저 일어섰어. 큐는 눈치없이 그런 본드를 또 헐레벌떡 쫓아갔지. 하지만 본드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어. 그 바람에 큐는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지. 겨우 본드의 팔을 잡아채는데 성공한 큐가 허리를 굽혀 숨을 고르며 말했어.



"어디..흡.. 아.. 가냐구요."


"자러 간다. 자러."


"에?"


"그동안 설친 잠 보충하러 간다. 이거 놔."


"...."



꽉 잡았던 본드의 팔을 큐가 놓았어.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큐와 한참 눈을 맞추던 본드가 한숨을 쉬며 말했어.



"..그래. 내가 널 모르는 것도 아닌데. 널 두고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병신이지."



본드가 자조하며 자리를 뜨고 난 후에도 큐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어. 눈새인 큐였지만 지금 자기가 뭔가 정말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큐는 바로 태너에게 달려가 자초지종을 모두 말했어. 그러자 태너는 [이런 망나니같은 놈] 이라는 눈빛을 하고 며칠 전에 본드가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며 본드가 했던 말들을 모두 알려주지. 큐는 그제서야 자기가 정말 실수한 걸 알았어.



"아.. 내가 대체 무슨 일을 벌인거야. 미치겠네."


"무슨 일을 벌였긴. 세금 때문에 사나이 순정 짓밟은거지. 그냥 반지 주면 주나부다 하고 조용히 받으면 되지 거기서 세금 얘기가 왜 나와. 돈에 미쳤어? 연봉 꽤 되잖아?"


"아씨.. 어떡하죠?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무조건 싹싹 빌어. 싹싹. 그리고 결혼하자고 다시 말해."


"전화 안받아요. 어쩌죠?"


"문자 보내봐."


"아까 보냈는데 답이 없어요."


"...그럼.. 뭐 어쩌겠어. 뭐든 해."



큐는 본드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지.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오늘 우리 저녁 밖에서 먹을까요? 당신 좋아하는 그 호텔 중식당 어때요?
그러나 답장은 없었지. 큐는 일단 반차를 쓰고 그대로 퇴근했어. 그리고 뻑적지근하게 저녁을 준비하려고 장을 잔뜩 봐왔지. 본드가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온 큐는 철판을 데워놓고 기다렸어. 그러나 퇴근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본드는 오지 않았어. 본드가 오려면 촛불을 켜려고 미리부터 온 집안 불을 다 꺼놨던 터라 집안엔 온통 어둠만이 가득했어. 밖에서 들어오는 달빛만이 유일한 빛이었지. 그 파란 어둠 안에서 큐는 차갑게 식어버린 것들을 앞에 둔 채 문득 굉장히 외로워졌지. 그리고 생각했어. 내가 지금 느낀 이 외로움과 미안함을 본드도 느꼈던 적이 있었을까. 그런 적이 없었으면 좋겠다.



같은 시각, 본드는 오랜만에 같은 요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중이었어. 큐를 만난 후 5년간 자기만의 통금시간을 만들어서 딱딱 지키던 본드가 오늘은 집에 갈 생각을 안했지. 동료들은 집에 갈 시간이 한참 지나지 않았냐고 물어왔어. 



"오늘은 어째 마나님께서 전화도 한 번 안하시네."



사랑이 식었다며 껄껄 웃는 동료들을 보며 본드가 술을 한 잔 꺾었지.



"오랜만에 실컷 놀려고 핸드폰 꺼놨다. 그리고 마나님은 무슨."


"열두살 연하한테 마나님은 좀 그런가? 그런데 뭐.. 어차피 결혼 할거잖아요. 이번에 법도 통과됐겠다.."


"됐다 됐어. 결혼이라니. 큰일날 소리 하고 있네."


"에이.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정착하셔야죠. 언제까지나 이렇게 하루살이 인생으로 살 순 없잖아요."


"우리같은 하루살이 인생이랑 결혼하겠다는 바보가 어디 흔하겠냐."


"...."



본드의 말에 일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어. 본드는 술을 한 잔 더 들이키고 말했지.



"오늘 방 잡고 제대로 놀자. 집에 갈 생각들 하지 마."



**



다음 날 아침, 큐가 피죽도 못 얻어먹은 듯한 퀭한 얼굴로 태너를 찾아왔어. 태너는 그 꼬라지에 놀라버렸지. 큐는 태너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했어.



"어제 외박했어요. 이게 말이 돼요? 연락도 없이 외박이라니.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거에요?"


"..응."


"......"



큐는 한숨을 푹 쉬며 태너의 의자에 앉았어. 그리고 더듬더듬 말을 잇기 시작했지.



"어제 집에 혼자 있는데 정말 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내가 말도 없이 회식이나 야근하는 날 본드도 이렇게 날 기다렸겠구나. 혹시 무슨 일 생긴건 아닐까 걱정했겠구나. 매일 생활하는 우리집이 이렇게 외롭게 느껴질 수도 있구나."


"....이제 철 좀 들었네."


"그리고 결심했죠. 난 이렇게 외롭게는 못살아."



퀭한 큐의 눈에 총기가 반짝 돌았어.



"저 결혼할 거에요. 유부남 타이틀 그까짓거 달죠 뭐."


"...문제는 결혼할 사람이 있느냐지."


"아저씨들은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려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저씨잖아요."


"야. 나 너랑 그렇게까지 나이 차이 많이 안난다. 얘가 왜이래."


"...요원용 가짜 신분 만들때 세 살 어리게 해달라고 한거 다 기록에 남아있거든요?"


"....."



**



잔뜩 부루퉁한 태너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정보는 굉장히 한정적이었어. 태너는 퉁명스럽게 말했지. 평소에 원했는데 못들어준 소원같은거 들어준다고 꼬셔보던지. 큐는 곰곰히 생각했어. 그리고 신들린듯이 손가락을 움직여 오전 일을 열시 반에 모두 끝내놓고 야근한 사원용 사우나로 가 땀을 빼고 씻은 다음 세시간 동안 점심도 안먹고 푹 잤지. 일어나 보니 2시 반이었어. 큐는 푹 들어간 눈과 볼이 어느 정도 부어서 매끈하게 빛나는걸 보며 수컷 공작새마냥 열심히 몸단장을 했지. 사우나를 나올 때의 큐는 들어갈 때의 유령신부 남주같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있었어. 큐는 바로 건물 지하의 트레이닝실로 향했지. 그곳엔 본드가 출근해서 땀을 빼고 있었어. 큐를 알아본 트레이닝실 직원들이 눈치껏 본드를 불렀지.



"더블오세븐! 애인 왔어요!"



본드는 흘끗 이 쪽을 보더니 30회 남은 턱걸이를 마저 하고 내려가겠다는 손짓을 했지. 큐는 본드가 30회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평소같으면 당장 나왔을 텐데. 화가 나긴 했나봐. 하지만 큐는 본드가 흉근을 부풀리며 철봉 위로 상반신을 올리길 반복하자 자기도 모르게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지. 누구 애인인지 가슴팍이며 팔이며 참... 당장이라도 달려가 물고 빨고 안기고 싶었지. 30회가 끝나고 수건으로 얼굴에 난 땀을 닦으며 나온 본드가 큐를 보며 말했어.



"신수가 훤해졌네."


"헤헤헤."


"좋냐. 앞으로 자주 외박해야겠다."


"안돼요. 보고 싶었어요."



솔직한 큐의 말에 본드의 불편한 심기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어.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더 꼼꼼히 닦아준 큐가 말했지.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그래."



**



둘은 요원들만 쓰는 휴게실로 갔어. 불 꺼진 휴게실로 들어간 큐가 본드를 앉혀놓고 문을 잠근 후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 머리에 달았지. 그건 바로..



"야. 너."


"..."


"으하하하하하!"



큐가 머리에 단 건 선물 포장할 때 쓰는 리본이었어. 생각과는 다르게 본드가 뒤로 넘어가며 웃자 큐는 심각해졌지.  



"...출장 다녀온 날 이러고 있으라는 얘기 지나가듯이 하지 않았어요?"


"미치겠다. 으하하하하."


"..취향이 아닌가보네."



큐는 의기소침해져서 리본을 머리에서 뗐어.



"떼지 마. 그러고 있어봐. 사진찍자."


"싫어!"


"그러면 나 오늘도 집에 안 들어간다."


"......"



큐는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리본을 머리에 달았어. 본드는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지. 큐는 고개를 저으며 본드를 제지했어.



"아직! 잠깐만! 나 할 거 있단 말이에요!"


"뭔데 또. 설마 몸에도 달았어?"


"빨리 핸드폰 치워요. 그리고 앉은 자세 바로 해요. 좀 경건하게."



큐의 닥달에 못이겨 본드가 소파에 바로 각을 잡고 앉았지. 큐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본드가 줬던 반지를 들고 본드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어. 본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지. 큐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어.



"유부남이 되겠습니다."


"...내 참."


"저와 결혼해주세요."


"세금 포탈 목적으로 위장결혼한다고 국세청에 신고할겁니다. 마음에도 없는 짓 그만 하세요."


"세금 같은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본드는 니가 퍽이나 그러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봤지. 찔린 큐가 변명을 시작했어.



"물..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일단 당신이랑 함께 있는게 더 중요하다구요."


"...."


"나 어제 스테이크랑 와인 준비했는데.. 다 버렸단 말이에요. 너무해."


"으이그."



본드가 짠한 마음에 큐의 머리를 쓸어넘겼지. 큐는 본드의 무릎에 반지를 올리고 말했어.



"당신이랑 같이 잘먹고 잘살려고 이것 저것 알아보고 줄일 거 줄이고 그러는 거라구요. 우리 결혼하면 은퇴해요. 나랑 오래 같이 살게."


"....."


"응?"



본드는 아무 말 없이 큐의 이마에 키스했어. 그리고 한숨을 쉬며 반지 대신 큐의 머리에 있는 리본의 끝을 당겨 매듭을 풀었지. 본드는 큐의 머리에 감겼던 리본을 말아 주머니에 넣었어.



"결혼 선물로 뭐 줄건데."


"뭐든."


".....내 경제권 뺏어가지 말아줘."


"......."


"이 나이에 용돈 타쓰는거 정말 죽기보다 싫다."


"..치사하게."


"빨리. 대답 할거야 안할거야."


"...급여 중에 70%는 내 통장으로 이체해야 해요."


".......60%."


"......65%."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럼 결혼 하는 거 맞죠?"


"그래."



헤헤헤. 큐가 본드를 보며 웃었어. 본드는 그런 큐를 무릎 위로 끌어올려 앉힌 채 온 얼굴에 키스를 퍼부어댔지. 행복한 한낮이었어.

 

 


  

 

1. 둘은 조촐하게 레스토랑을 빌려서 가까운 사람들과 저녁을 겸한 파티를 하는 걸로 식을 대체했다.

2. 태너는 공을 인정받아 본드와 큐에게 좋은 수트를 한 벌 받았다.

3. 둘의 결혼 선물 목록을 잠시 훔쳐보자. 말로리-제습기. 태너-포장지에 부부 권태기 극복을 위하여! 라고 써있는 페로몬 비누. 머니페니-와플기. 실바-쥐 두마리가 그려진 캣타워. M-아기 유모차.

4. 후에 M은 자기 딸에게 갈 게 잘못 배달됐다며 유모차를 다시 가져가고 인테리어 소품인 도자기로 된 강아지 인형을 대신 줬다. 큐와 본드는 밸붕이라며 M을 자택에 10분간 감금했고 M은 결국 두 부부강도에게 피자를 두 판 시켜주고 난 후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5. 신혼여행은 근교에서 드라이브를 한 뒤 집 옆의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묵는 것으로 대체했다. 둘은 출장에 질려서 이제 여행이라면 학을 뗀다.

6. 본드는 현장직에서 은퇴하고 바로 연수원으로 갔다. 이직 사이의 공백이 없다며 큐가 아주 좋아했다.

7. 세금이 많이 줄었다. 큐가 더욱 기뻐했다.


 

 

 

끝!


 

 

 

외전

 

 



5년간 사실혼 관계였다가 혼인신고를 했기에 처음엔 서로 그닥 달라질게 없다고 생각했어. 늘 살던 집에서 같이 살고 늘 함께 키우던 고양이를 그대로 키우고, 늘 다니던 직장을 다니고(본드는 연수원으로 옮겼지만) 늘 자던 침대에서 같이 아침을 맞았거든. 그러나 둘은 요즘 실감하고 있었어. 연애와 결혼은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둘은 서로 조금씩 변하고 있었지.



본드는 여전히 실력있는 요원이었어. 큐에게만 조금 말랑하게 구는 것 외엔 여전히 냉철하고 여유로웠지. 하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변했어. 큐의 표현에 따르면, 본드는 요즘.. 가정용으로 진화했지. 큐에게 껄렁껄렁 걸던 장난이 확 줄어든게 가장 큰 변화였어. 예전엔 둘이 집에 있을 때 큐를 가만 안뒀거든. 고양이 밥을 주러 쫑쫑쫑 걸어가는 큐의 엉덩이를 소파에서 손만 내밀어서 아프도록 한손에 꽉 쥐기도 하고 자고 있는 큐로 운동을 하기도 했어. 그럴 때면 큐는 자다 깨서 봉창 두드려맞는 심정으로 본드의 팔에 들려 움직여야 했지. 거기다가 왈츠 하나 모르는 무식한 공돌이에게 춤을 가르쳐 준다면서 큐를 빙빙빙 돌리기도 하고 리버풀의 경기를 볼 때면 항상 큐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보곤 했지. 골 넣으면 환성을 지르면서 큐를 어깨에 들쳐메고 방 안을 뛰어다녔고. 그럴때면 큐는 반쯤 졸며 본드에게 몸 여기 저기를 만져지다가 갑자기 어깨에 빨래처럼 걸쳐져서 멀미를 느껴야 했어. 그렇게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큐를 괴롭히는게 습관이자 사는 낙인 본드였는데, 큐와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고 오는 길에 손을 꼭 잡아오던 그때부터 뭔가가 바뀐 거야.



"요즘 본드는... 음... 뭐랄까. 아빠같아요."



크림맥주를 들이키던 큐가 창 너머 먼 곳을 보며 툭 던진 말에 태너의 표정이 사정없이 구겨졌어. 오 마이 갓. 비위상해. 아빠라니..



"예전엔 수컷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아빠에요."


"....지금부터 오늘의 금지어는 아빠야."


"..부ㅊ..."


"부친도 안돼.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그 어떤 것도 안돼. 제발."


"..흠."



스트레잇들이 의외로 유리멘탈이란 말이야. 큐는 어깨를 으쓱하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지.



"하다못해 동네 마켓에 장을 보러 가도 말이에요. 평소라면 그냥 얘기하면서 각자 주머니에 손 찌르고 걸어갔을 텐데.. 요즘은 자꾸 손을 잡아요. 그리고 자꾸 손바닥으로 허리를 길 안쪽으로 밀어요. 난 길 안쪽으로 걷는 거 싫은데. 그리고 밤에 자꾸 팔베개를 해주려고 해요. 난 침대 가장자리에 딱 붙어서 자는게 좋은데. 자기도 분명히 팔이 아플 텐데 왜 그러는지 몰라요. 나도 목이 아프거든요."


"...."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자기가 요즘 이상한 책임감이 생겨서 그런대요. 본인도 미치겠다고 하더라구요. 자기가 무슨 큰 무리를 이끄는 대장원숭이인줄 알아. 어차피 우리 무리에 다른 수컷은 나뿐인데. 암컷이라곤 우리 고양이 하나고. 헉.. 그러고 보니 요즘 운동도 더 열심히 해요. 오래 살아야 한다고. 뭐야. 나한테 리더를 뺏길까봐 견제하는 건가? 알죠 태너. 난 권력욕이라고는 없는 인간이잖아요. 내 뇌 자체가 권력이고 클래스인데 내가 왜 굳이 그러겠어요."


"...정말 고민이 맞긴 한거야? 고민 상담 한다더니.. 지금.."


"너무 고민이에요. 그냥 예전처럼 날 엎어치고 메쳐줬으면 좋겠어요. 5년 동안 맨날 롤러코스터를 탔더니 이젠 택시 못타겠어요."


"매져가 된거야?"


"무슨 소리에요. 맞는건 싫어요. 태너 같으면 본드 손에 맞고 싶겠어요?"


"절대 아니지."


"난 이렇게는 못살아."



염장 자제염을 얼굴에 써붙인 태너의 앞에서 큐가 테이블에 머리를 쿵쿵 박고 있던 그 시간, 본드는 M과 상담중이었지.



본드 역시 큐의 변화에 당황하는 요즘이었어. 큐는 사회성이 정말 없었거든. 어느 정도였냐면, 연애 초기때 본드가 M에게 찾아가 혹시 큐브랜치 애들은 입사할때 사회성 제거 수술을 받냐고 진지하게 물어볼 정도였어. 일단 큐는 돌려 말하는 걸 못해. 아니 안해. 그럴 필요를 못느끼거든. 그런데 요즘은 아니야. 놀랍게도 큐는 요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본드의 눈치를 보며 본드의 상황에 맞춰 말해주고 있었어. 예전의 큐는 절대 그러지 않았어. 유모차에 누워 빽빽 우는 젖먹이와 그 아이의 엄마를 보며 본드. 저기 좀 봐요. 못생긴게 시끄럽기까지 해요. 좋은 레크리에이션 강사가 될 것 같아요. 라고 돌직구를 쏴서 아이 엄마에게 삿대질을 당한 적도 있고, 본드와 같이 퇴근하려고 요원들 트레이닝실에 내려왔다가 짓궂은 현장 요원들의 심문에 그대로 넘어가 둘의 섹스라이프를 줄줄줄줄 묻는 대로 다 읊어대기도 했어. 물론 좋은 점도 있었지. 밀당이 필요 없었거든. 본드가 뭘 하든 자기만 좋으면 본인이 지금 화를 내야 할 타이밍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본드 좋아해요 헤헤헤. 결혼해요 헤헤헤. 이런 식이었으니까. 대신 정말 싫을 때 그 긴 눈에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처럼 사정없이 눈을 부라리며 지금 당장 당신을 골프채로 사정없이 패서 죽여버리고 싶어요. 당신이 탄 비행기를 해킹해서 로키산맥에 쳐박아버리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건 정말 무서웠지만. 아무튼.. 본드는 5년간의 그 모습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졌단 말이지. 그런데 최근에 큐는 너무 달라졌어.



"회식할때면 전화를 해서 허락을 받는다니까요. 알다시피 제가 그렇게 가부장적인 캐릭터는 아니잖습니까. 전 상대의 커리어를 존중하니까요. 회식도 일의 연장이잖아요. 안그래도 야근 잦아서 있던 친구도 다 떨어져 나갔을 그 애인 없는 너드들, 모아다가 술이라도 먹이면서 스트레스 풀어줘야죠. 얼마나 좋아요. 아참. 야근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요. 야근할 때면 퇴근 전에 트레이닝실로 찾아와서 팔자눈썹을 하고 키스를 해주고 가더라구요. 그러면서 미안하다고 한다니까요. 내 참. 일이잖아요. 게다가 그 팀 팀장이잖아요. 일일이 허락받는 거 웃기지 않아요? 아직 사회를 모르는 건지."


"....."


"무슨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나랑 저녁을 같이 먹어야 하는 것 처럼 구는 통에 요즘 저녁을 큐 따라서 고칼로리로 먹었더니 자꾸 살이 찌는 것 같아요."


"아니야. 변한 건 잘 모르겠는데."


"먹고 미친듯이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꼭 운동하는 앞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해요. 예전 같으면 그렇게 앉은 자세 그대로 입맛을 싹 다시면서 본드. 상체가 터질 것 같아요. 칼로 살짝 찌르면 옷이 터지겠어요. 쬲.. 운동 다 하고 같이 샤워해요. 근육 갈라진 데에 물 떨어지는거 보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서 사람 소름 돋게 할텐데. 요즘은 애써 혀를 간수하고 흘끔흘끔 훔쳐보면서 청순한 척을 한다니까요. 침대에서도 어찌나 정숙한 ㅊ.."


"그만. 내 나이에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 더군다나 난 자네와 큐를 코흘리개 때부터 봐온 사람이라구."


"죄송합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잠자리에서도 무슨 청교도인처럼.."


"다른 점이 뭔가!!!"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어찌 됐건.. 그렇게 구는 통에 요즘 제가 고민이 많습니다."


"..대체 어디가 고민이라는 거야."


"왜 새삼 부끄러움을 탈까요. 양 잡아먹는 늑대놀이도 하루 이틀이지. 전 제 파트너를 밤마다 사냥하고 싶지 않아요."


"..."


"전 더이상 이렇게 유부녀 따먹는 쪽국 AV처럼은 못삽니다."



M의 긴 한숨소리와 태너의 이 가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독 크게 들려왔지.








 


2013.09.11 (16:15:49)
0a1cb
모바일
선생님 이게 끝은 아니겠죠 어나더요 ㅠㅠㅠㅠㅠ
[Code: 8806]
2013.09.11 (16:37:23)
36f86

이거 끝은 아니죠???선생님 제발ㅠㅠㅠㅠㅠㅠㅠ

[Code: d6dd]
2013.09.11 (19:52:24)
cf416
모바일
이 민폐 커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너랑 M 애도요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e7c5]
2013.09.11 (20:11:04)
34979

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산생님 ㅠㅠㅠㅠㅠㅠ어나더요 ㅠㅠㅠㅠㅠㅠ

[Code: 025a]
2013.09.11 (20:49:49)
cd46e
모바일
어나더!!!!!!!!!!!!!! ㅠㅠㅠㅠㅠㅠㅠㅠㅠ 좋아요 선생님 ㅠㅠㅠ
[Code: 3e54]
2013.09.11 (21:46:05)
113cd

선생님 여기서 끝은 아니겠찌요????? 전 믿고 있어요 선생님 어나더라는 것을..!!!!!!!!!!

[Code: b01e]
2013.09.11 (21:56:36)
de6e7
모바일
대작입니다 어나더가 필요합니다.
[Code: 55c1]
2013.09.12 (01:23:59)
94f5b
모바일
둘의 결혼생활을 더 보고 싶습니다! 어나더 제발요ㅜㅜㅜㅜㅜㅜ
[Code: 267e]
2014.03.13 (08:36:31)
63f10
모바일
대장원숭이ㅋㅋㅋㅋㅋㄱ쪽국 avㅋㅋㅋㄱㅋㅋㄱㄱ비유 개 찰져ㅋㅋㅋㅋㅋㅋㅋㄱㅋㅋㄱ 선생님 지금이라도 어나더 하나만 더 주세요ㅠㅠㅠ 군만두는 섭섭치않게 준비했어요
[Code: ad0e]
2014.06.13 (00:40:11)
29c7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선생님 존나 찰져요 ㅋㅋㅋㅋ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de: 97e3]
2014.06.27 (00:45:10)
430ee
모바일
ㅋㅋㅋㅋ찰진 염장질도 저정도면 프로네. 선생님 금손에 여기 자리 피고 갑니다!
[Code: f694]
2014.07.03 (20:30:45)
31249
모바일
아.. 선생님 신묘한 단어선택에 더 재밌었어요. 그러니 어나더!!!!!
[Code: f694]
2015.05.28 (13:14:07)
380dc
모바일
미래에서왔어여 선생님... 복습은 언제나 옳습니다!!!
[Code: 0432]
2016.05.14 (13:57:37)
96c92
선생님 이건정말 대작입니다..제발..
[Code: b748]
Notice 휘갤 사이트 이전 알림 [20] 01-02 6230 49
19363 ■ BWDB: 벤 휘쇼 데이터베이스 (Filmography of Ben Whishaw) ■ [17] 05-13 6939 208
19362 ㅈㄱㅁㅇ 휘갤에도 눈새들 박제함 모바일 [47] 11-24 2272 183
19361 ???!?!???!??!? 휘쇼가 사랑해요란 말도 해줬네! [52] 06-03 5505 180
Selected ㅈㅇ00q로 사실혼 관계인데 둘만 인정 안하는게 보고싶은 ㅁㅅ + 외전 1개 [14] 09-11 10464 170
19359 ㅈㅇㅁㅇ 지마켓에서 딜도 파는 다아시 X 러다이트 휘쇼 [18] 04-19 10766 149
19358 휘쇼비들아 우리 휘쇼 일화글 하나로 모아서 영업용 좌표 만들자! [9] 10-08 10872 143
19357 텀블펌) ㄹㅇ양덕만세다 다아시휘쇼 봐라 휘바들아 [34] 04-30 6447 128
19356 ㅌㅈ00q 의외로 현장 적응 잘 하는 q 모습에 놀라는 본드가 보고 싶다 [13] 09-20 7341 119
19355 자기가 완장눈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에게 모바일 [7] 11-25 1690 115
19354 ㅎㅂ00q에 오메가버스 끼얹어서 본드 잡고 싶어서 임신하려고 노력하는 난임 Q 7~12 [13] 08-15 10184 115
19353 00q로 큐랑 본드 사이의 쌍둥이가 싸우면 팔불출 본드가 애들교육하는 썰 [13] 11-25 6100 112
19352 ㅌㅈ ㅁㅅㅈㅇ 007 덕후인 프레디가 본드를 만났으면 좋겠다 [12] 04-13 5974 105
19351 뉴휘반데 입갤신고로 휘쇼를 그려보았다 [16] 06-12 2817 104
19350 ㅌㅈㅈㅇ다아시X휘쇼 우리 결혼했어요 200일 특집 [내가 한 가장 큰 실수] [24] 05-22 4530 100
19349 그냥 웃자고 썼던 휘쇼 무순 몇 개 해연이네에 올렸던거 묶어서 재업 [17] 09-29 8427 98
19348 ㄱㅈㅅㅈㅇ 다아시 휘쇼 좆목 사진으로 만들어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4] 04-18 5336 98
19347 환불원정대.WHISHAW [28] 04-19 5956 93
19346 ㅌㅈㅁㅅ 00q 뭐든 서투른 큐랑 큐를 보는 족족 오해하는 본드 1~10 [14] 06-15 10411 92
19345 여왕님으로 수상소감 [24] 05-13 4423 92
XE Login